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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각

짝사랑은 누룩꽃에서

by 화산파 3대 제자 지신 2024.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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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술집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바깥에서는 가을 바람이 살랑 살랑 불어와 코 끝을 시원하게 했지만 이곳만큼은 젊은 청춘들의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번잡한 소리 속에서도 술잔이 부딪치는 소리는 끊임 없었다.

 

지수는 테이블에 앉아 소주잔을 만지작거린다. 긴장한 얼굴이 역력한 그는 맞은편에 앉은 지혜를 바라보았다. 지혜는 그 시선을 눈치챈건지 시선을 피한다. 지수가 오랜만에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가지게 된 술자리다.

 

"그동안 잘 지냈어?" 지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애써 담담한 척 했지만 말끝에 미세한 떨림이 느껴진다.

 

"뭐, 그냥 늘 비슷하지. 너는?" 지혜는 짧게 대답하며 시선을 피해 창밖을 바라본다.

 

"군대가 뭐 늘 똑같지. 이렇게 휴가 때나 잠깐 쉬는거야."

 

지수는 오랜만에 입은 사복이 어색한지 셔츠 소매를 매만지며 애써 평소와 같은 표정을 지으려 노력한다. 간만에 마신 바깥 공기도 좋았지만, 그보다 더 떨리고 긴장되는 이유는 바로 이 순간 때문이었다. 그가 꿈꿔온 단 한 순간.

 

그런 지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혜는 잔을 들어 소주를 한 모금 마셨다. 뭔가 복잡해 보이는 표정, 지수는 그런 지혜의 표정을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군대에서 많이 힘들었어?" 지혜가 조심스레 물었다.

 

"힘들다면 힘들지, 그래도 괜찮아. 너랑 이렇게 만나면 싹 잊혀지니까." 지수는 술기운을 빌려 거침없이 말했다. 순간 지혜는 그가 농담을 하는건지 진지하게 말한 건지 헷갈렸다.

 

"그냥 너랑 이렇게 만나는 게 좋아." 지수가 말을 이어갔다. 한 번 뱉고나니 목소리의 떨림이 좀 사라진 느낌이다. 동시에 마음 속에 무언가 더 꺼내고 싶은 말들이 솓구쳤다.

 

"지수야.." 지혜는 그런 그의 눈을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줘? 나 말고 다른 여사친들한테도 이렇게 하는거야?"

 

지수는 그녀의 대답에 따르던 소주잔을 내려놓고 창 밖을 바라본다. 드디어 진심을 얘기할 기회가 왔다. 군대에서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렸던가. 창 밖을 보던 시선을 돌려 그녀의 눈을 응시한다.

 

"지혜야, 난 네가 좋아. 친구로서가 아니라 이성으로서, 진짜 좋아해."

 

긴장한 나머지 말이 살짝 꼬였지만 어쨌든 괜찮다. 막상 뱉고나니 더이상 떨리지 않는다. 시끄러운 술집이 오직 두 사람만의 공간이 된 듯 고요함까지 느껴졌다.

 

지혜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아마 고백을 예상 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혜 또한 나름의 답변을 준비해온 거 같았다.

 

"지수야, 나... 이미 남자친구 있어. 너도 알잖아." 지혜는 조심스레 말했다. 오히려 그녀의 목소리에 떨림과 미안함이 묻어났다.

 

"알아, 당연히 알지. 근데 그냥 말해야 할 거 같았어. 안 그러면 평생 후회할 거 같았거든."

 

지수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술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지혜는 잠시 고민하더니 그 잔을 받아들었다. 두 사람은 말 없이 잔을 부딪쳤다. 이상하게 좀 전까지 달다고 느꼈던 술이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

 

지혜는 잔을 비우고 잠시 눈을 감았다. 이미 그녀의 머리속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듣고나니 더 복잡한 심정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는 친구로 남는 게 좋을 거 같아." 지혜가 마침내 말했다.

 

지수는 그녀의 말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물론 마음 한 켠이 시큰했지만 그녀의 결정을 존중하고 따를 것이라 진작에 마음 먹었었다. 지금 이 순간을 망가트리고 싶지 않기도 했다.

 

"응, 고마워. 네 말대로 친구로 남자. 괜히 널 힘들게 만들었다면 미안해."

 

지수의 답변을 들은 지혜는 고개를 저으며 웃어 보였다. "아니야, 오히려 고마워 솔직하게 말해줘서."

 

그녀의 말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 말이 지수의 가슴 한 켠에 깊은 상처로 남을 것임을 말하지 않아도 두 사람 다 알고 있었다.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르듯, 술집 안의 시끌벅적한 소음이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둘 사이의 침묵이 조금 길어졌지만 그 시간이 두 사람의 새로운 이해관계가 되었다. 그들의 관계는 이제 이전과 같을 수 없다. 이 침묵은 아마 그걸 받아들이는 시간이지 않았을까.

 

 

 

그날 이후 지수는 다시 군대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비록 그의 고백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후회하진 않았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 그녀를 향한 감정이 아직 남아있는 게 느껴진다. 이렇게 또 하나의 추억을 담고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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